Midong Column

우리 함께 가요

4 virdei 0 1318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꼭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나는 내 약함을 자랑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11:29~30

공동체라는 명사는 듣기에도 좋고 말하기에도 좋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공동체'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르긴 해도 사람들이 공동체를 말할 때​ 선함을 생각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동체는 평화로운 낙원은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도 문제가 있고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미동 공동체도 상처입은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전에 다니던 직장이나 교회에서 조차 상처를 입었으며, 지금 여기서도 매일 그렇습니다. 상처가 없었다면 편안한 직장이나 교회를 떠나 낯선 미동으로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상처는 다양합니다. 도덕이나 교리, 교권주의, 정치적 입장, 관계적 갈등을 이유로 차별 받거나 배제된 경험에서 생긴 상처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개인들의 상처가 너무 다양해서 한 가지 치료방식이 있을 수 없다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있어 책임지고 상처를 치유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먼저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치유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나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그것이 갈등을 일으켜 새로운 상처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이런 갈등과 상처를 경험하게 되면 속상하고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렇찮아도 고단한 인생인데 여기서도 이런 갈등과 상처에 시달려야하나 생각하면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힘들 때면, 지난해 11월 82세로 먼 길 떠난 레너드 코언의 'Anthem'이라는 노래의 가사 구절을 떠올립니다.

"There'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모든것은 깨어진 틈이 있지, 바로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거야 ~ 깨어진 틈 같은 우리의 상처, 연약함이 바로 은총의 빛이 우리 삶으로 들어오는 조건이며 통로라는 것입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가 배운것은, 상처입고 갈등을 겪을 때 마다​ 내 마음의 키가 조금씩 자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삶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공동체가 성숙한다는 것은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변화되는 것입니다.이런 자각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져줍니다. 만약 우리에게 상처가 없었다면, 공동체가 함께겪는 갈등이 없었다면 우리는 성숙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 우리는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갈등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상처를 자매형제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이 연약함을 서로 나누려면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사랑입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가장 강한 사랑은 자신의 연약함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랑하려면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성령이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실것이다."(롬8:26)

성령은 연약한 우리를 파도처럼 움직여 서로 마찰하게 하고 깨어지게 하고 사랑하게 합니다. 그렇게 성령의 도움으로 자신과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게 되면, 우리는 헨리 나우엔이 말한 '상처입은 치유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도 치유하게 되지 않을까요 ?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라면 지겠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버틸 수 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도서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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